“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중요해요” 뮤지컬 <고래밥> 박수경 작가 인터뷰

  • 글. 동아일보 이호재 기자
  • INTERVIEW

“고래~고래~”

고래 ‘라두’가 자신을 소개하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샛노랗고 해맑은 미소를 지닌 라두가 방금 과자에서 튀어나온 듯 무대 위를 뛰어다니자, 아이들은 연신 박수치며 깔깔거렸다. 라두가 춤을 추니 아이들은 몸을 정신 없이 흔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엔 모두가 목이 쉬어라 외쳤다. “짝짝짝. 다 함께 응원해. 42회 바다 대운동회!”

7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초연 중인 이머시브 뮤지컬 〈고래밥 – 바다 대운동회〉는 국민 과자 ‘고래밥’을 무대화한 작품. (재)마포문화재단(대표이사 고영근)이 2026년 가족·어린이축제 ‘해피 마포 와글와글’의 여름 프로그램으로 ㈜오리온, ㈜아트큐브컴퍼니와 협력해 선보이는 가족뮤지컬이다.

평소 ‘유튜브’에만 빠진 아이들을 어떻게 이토록 신나게 만들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박수경 작가는 “아이들은 늘 노는 걸 제일 좋아한다. 신나게 한바탕 뛰어놀게 하면 된다”고 웃었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 영상을 보는 데만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공연을 보며 ‘현장’에서 즐기고 뛰어노는 기쁨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운동장이나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하하.”

● 42년 국민과자에 이야기를

박 작가는 어린이 콘텐츠를 주로 만든 작가다. MBC 〈뽀뽀뽀〉 메인작가로 활동하며 〈번개맨〉, 〈전천당 시리즈〉, 〈100층짜리 집 시리즈〉 등 다수의 가족뮤지컬에 참여했다. 이런 박 작가가 오리온이 1984년 출시한 과자를 뮤지컬로 맛깔나게 만든 건 42년 동안 쌓아온 고래밥의 지식재산권(IP)에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한국 어린이 뮤지컬 시장은 이야기를 만들 IP가 부족해 늘 새로운 원천을 찾는다”며 “부모든 아이든 고래밥은 다 좋아하니까 뮤지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사실 고래밥에는 캐릭터 그림과 이름만 있을 뿐 이야기는 없다. ㈜아트큐브컴퍼니에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고래밥을 조사하다가 2018년 나왔다 사라진 자매품 ‘상어밥’에 대해 알게 됐다. 고래팀과 상어팀이 과자 이름을 걸고 41년을 겨뤄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무대 위에서 열리는 건 그 42회째 대회다. 상어팀이 이기면 과자 이름이 상어밥으로 바뀐다.

원작 없는 IP를 맨바닥에서 세우는 건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뮤지컬은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다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이번엔 그림과 이름뿐인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어야 했다.

“가장 큰 고민은 과자 안에 있는 무생물을 어떻게 살아 숨쉬는 생물로 재창조할 수 있을까였어요. 제주도에서 고래밥을 먹다가 답이 나왔어요. 고래밥을 바닷속에 빠뜨리면 어떨까 싶었죠. 과자 상자가 뒤집어져 가라앉고, 물을 만난 과자들이 살아나면서 운동회가 시작되는 겁니다.”

공연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게 만드는 건 ‘응원단’ 시스템이다. 객석에 앉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마치 야구장에 온 것처럼 손에 응원 도구를 쥐고 짝짝 소리 내 응원한다.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미역처럼 거대한 천을 앞뒤로 넘기고, 기억을 되살리며 수수께끼를 함께 맞힌다. 객석과의 경계를 낮춘 공연 형식인 ‘이머시브’를 아이들이 즐기는 것이다.

관람 연령이 20개월 이상인 것도 그래서다. 아주 어린 아이가 이야기를 다 따라오지 못해도 응원은 할 수 있다. 박 작가는 “공연에서 아이들은 울어도 되고, 자다 깨도 되고, 간식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얼마 전 서른 명 남짓한 어린이집 단체 관객이 다녀갔어요. 그런데 우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뿌듯하더라고요.”

물론 부모 세대도 즐길 수 있다. 특히 극 중간 고래밥 CM송이 흘러나올 땐 부모들이 아이들보다 더 흥얼거린다. 오래 귀에 익은 멜로디가 추억을 불러일으킨 덕이다. 박 작가는 “국민 간식이란 게 온 가족이 함께 빠져드는 문화인 걸 깨달았다”고 했다.

어린이 콘텐츠라고 눈높이를 낮추지도 않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어른도 함께 보듯, 박 작가는 이 작품을 처음부터 ‘가족 뮤지컬’로 설계했다.

“어린이 뮤지컬이라고 유치하게 쓰지 않아요. 그림책도 어린이만의 책이 아니고, 동시도 어른이 읽잖아요. 어렵다 쉽다의 기준이 나이에 따라 갈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경쟁보다 우정과 협동심

극이 재미만을 좇는 건 아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찾는 작품인 만큼 아이들이 70분의 뮤지컬을 보고 난 뒤 무엇을 얻어갈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담겨 있다.

박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인 건 운동회의 ‘승패’를 어떻게 그릴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늘 이긴 자와 진 자가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등수 경쟁에 내몰린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겼다고 말해주는 게 답일까. 박 작가는 여기서 중심을 잡는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고, 지는 것도 중요하고,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중요하다”는 박 작가의 말처럼 공연은 한쪽에 기울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이 남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박 작가는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고 나면, 남는 건 존중과 배려”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렇기에 라두와 맞서는 ‘악동’ 후크의 역할이 중요하다. 후크는 우정을 중시하는 라두와 달리 동료를 저버리고 반칙을 하면서도 라두를 끝까지 이기려 한다. 하지만 후크 역시 승부와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끝내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후크를 보다보면 박 작가가 그려낸 〈번개맨〉의 ‘나잘난’과 ‘더잘난’처럼 자연스레 정감이 간다.

“악동은 질투하고 욕심을 부려요. 그런데 그 마음을 계속 키우면 악당으로 자라나죠. 그렇게 자라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게 좋은 어른의 몫이에요. 친구가 경쟁 상대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했어요.”

‘협동심’도 박 작가가 중점을 둔 지점이다. 이번 운동회에는 혼자 할 수 있는 경기가 하나도 없다. 박 작가는 “아이들이 함께 해내는 기쁨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래밥’을 찾는 관객에게 한 마디를 부탁하자 박 작가는 잠시 고민하다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었어요. 대사 하나, 노랫말 하나를 소중하게 썼고요. 아이들이 스마트폰만 보는 시대에, 덥고 힘든 여름 무해한 공연 하나 보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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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2026 마포문화재단 가족ㆍ어린이 축제
[해피 마포 와글와글] 이머시브 뮤지컬 <고래밥 - 바다 대운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