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철수 아저씨가 본 영희 페스티벌

  • 글. 뉴시스 이재훈 기자
  • REVIEW

저는 1981년에 태어나 2007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요조, 오지은 씨와 같은 해에 태어나 2008년 데뷔(입사)한 철수입니다. 요즘은 달달한 디저트보다 점심 식사 후 억지로 욱여넣는 홍삼 스틱의 씁쓸함이 더 위로가 되고, 별것 아닌 영상에도 주책맞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영락없는 40대 아저씨가 됐습니다. 이 시대의 어쩌면 기울어진 운동장 위쪽에 자리 잡은 40대 남성 기자라는 위치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을지언정 사회적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조직의 위계와 가부장제의 안전망 속에서 저는 꽤나 푹신한 기득권을 누려온 셈입니다.

부끄러움을 먼저 고백하는 것이 글을 쓰는 자의 최소한의 윤리일 것입니다. 과거 취재 현장의 게으른 관성 속에서 저는 수많은 여성 뮤지션들에게 '홍대 여신'이나 '홍대 마녀'라는 납작한 수식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붙였습니다. "칭찬인데 좋지 않을까"라는 안이한 생각도 했습니다.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마포아트센터에서 사흘간 3000여 명의 발걸음을 모은 '제1회 영희 페스티벌'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역사의 다층적인 지층을 소거하는 데 무심하게 동참했던 한 둔감한 철수의 뒤늦은 속죄 의식이자 명랑한 전복에 대한 조용한 감응의 기록입니다. 마흔이 넘어 누군가의 맹렬한 진심 앞에 무장해제 당하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철수는 고단한 그녀들 앞에서 헛기침을 거두고 조용히 깊게 공명합니다.


[사진] 영희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아티스트 사진 모음 ⓒ전예솔, 정연화 작가

어떤 무대는 존재 자체로 세계를 향한 무거운 윤리적 선언이 되기도 합니다. 영희 페스티벌은 그 무거운 이념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유와 해방, 연대를 노래했습니다. 깃발을 흔들거나 핏대 세워 구호를 외치는 대신, 끈끈한 음악적 연대를 씩씩하게 펼쳐냈습니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들의 미학적 질감을 객석에 앉아 조심스레 가늠해 봅니다. 타인의 고통을 대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결단을 요구합니다. 과거 제가 얄팍한 시선으로 봤을 때 그녀들의 목소리는 환성인 줄 알았는데 깊은 원성이었고, 탄식인 줄 알았는데 처절한 비명이었습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는 적막인 줄 알았지만 가장 고밀도의 발화를 위한 묵직한 침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겁거나 우울하게가 아닌, 경쾌하고 위트가 넘치는 유머로 받아 넘기는 영희 페스티벌의 번뜩임은 참으로 용감했습니다. 기획자인 오지은 씨가 더구나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이 시대의 강박적인 정치적 올바름(PC)을 유연하게 비틀어버리는 장면은, 예술이 어떻게 낡은 프레임을 웃음으로 가뿐히 해체하는지 보여준 경이로운 찰나였습니다.

예매자의 87.3%가 여성이라는 통계 앞에서, 튀어나온 배를 집어넣으며 쭈뼛거리던 아저씨는 이내 깨달았습니다. 여자들이 온전히 즐겁게 노는 자리를 아니꼽게 볼 못난 철수만 세상에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영희의 서사에 스며들어 기꺼이 '개념남'을 자처할 철수들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해방의 진지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툭하면 자본의 논리로 예술을 깎아내리려는 이들에게 축제는 통쾌하게 응답했습니다. 티켓은 단숨에 매진이 됐고 주변 식당, 카페는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부산에서 월드투어 '아리랑'을 여는 동시에 부산 지역을 축제로 탈바꿈시킨 'BTS 더 시티'도 펼쳐 지역 상권을 활성화시키며 'BTS노믹스'라는 말을 다시 소환했는데, 영희페스티벌이 가져온 효과를 '영희노믹스'로 명명해도 과장이 아닐 법합니다. 이는 여성 뮤지션은 돈이 안 된다는 시장의 편견을 코웃음 치듯 비웃으며, 치밀한 브랜딩으로 막강한 소비력을 지닌 여성 팬덤을 움직인 결과입니다. 예술에서 돈이 된다는 건, 그 서사가 시대의 보편성을 획득할 만큼 압도적 가치를 지녔다는 명징한 증명입니다. 공공기관 중 가장 유연한 마포문화재단과 여성인 이소영 대표가 이끄는 민간 공연기획사 유어썸머의 시너지는 컸습니다. 선우정아 씨, 이상은 씨, 김윤아 씨를 헤드라이너로 동시에 내세울 수 있는 국내 페스티벌은 드뭅니다.

영희 페스티벌 공연 장면
[사진] (시계방향으로) 영희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 중인 가수 오지은, 남메아리밴드, 안다영, 선우정아, 이랑 ⓒ전예솔, 정연화 작가

축제의 심장부에서 눈부시게 빛난 것은 젠더라는 꼬리표가 완벽히 거세된 거대한 '음악' 그 자체였습니다. 남메아리 밴드가 편곡한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 이랑이 부른 '늑대가 나타났다'는 창작자의 절대적인 존엄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선우정아 씨가 독보적 문법으로 재해석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안다영 씨가 몽환적으로 부른 르세라핌의 '스파게티'를 보며 뒷목이 찌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수동적 시각 대상으로 소비되기 쉽던 K-팝 아이돌의 노래마저 주체적 창작자를 거치며 전복적 미학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 순간 묻게 됩니다. 여자인데 대단하다? 아니, 뮤지션이라서 위대합니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좁은 괄호를 부수고 거대한 '뮤지션'의 영토로 망설임 없이 직진했습니다. 대선배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혼신으로 커버한 오지은 씨의 맹렬한 에너지는, 벌써 무릎이 삐걱대는 동갑내기 철수를 단번에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찬란한 연대의 축제를 둘러싼 바깥의 서늘한 온도차입니다. 영희 페스티벌이 끝났는데도 각종 공격이 넘칩니다. 오지은 씨는 축제가 성료됐는데도 예상치도 못했던 공격까지 감내하고 있습니다. 어떤 남성 뮤지션도 이토록 거대한 편견 앞에 담대하게 나서지 못합니다.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계에 두 발을 들이고 그 감각을 온몸으로 흠뻑 공유하는 일입니다. 어떤 뮤지션을 이해하려면 직접 듣고 봐야 합니다. 그가 견디는 것과 아끼는 것과 소중하게 여기는 것, 특히 지독하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영희 페스티벌은 그 사랑의 대상이 얄팍한 수식어가 아니라 오직 완전무결한 '음악'일 수 있도록, 운동장의 지형을 평평하게 고르는 가장 아름답고도 치열한 투쟁이었습니다.

영희 페스티벌 야외 배너와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사진] 영희페스티벌 야외 배너와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안전제일주의에 찌든 아저씨로서는 이 거대한 판을 무에서 유로 짜내기 위해 그녀들이 무대 뒤에서 삼켰을 인내와 눈물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페스티벌 기획자들, 특히 오지은 씨는 뼈가 깎이듯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저 덜 힘들기 바란다는 건 다소 무책임한 위로일 뿐입니다. 수십 년을 켜켜이 쌓아온 낡고 견고한 편견의 장벽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철수는 염치없이 소망합니다. 그녀가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감내하기보다는, 그녀 옆에 함께 비를 맞고 목소리를 내어줄 더 많은 이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굳이 '영희'를 호명하지 않아도 창작자의 존엄이 온전히 지켜지는 세상. 기획자의 선언처럼 축제가 온전한 상실과 기꺼운 소멸을 맞이할 때까지, 비록 머리숱은 얄팍해지고 감수성만 예민해진 40대 아저씨일지언정 이 명랑한 선언 곁에 단단히 머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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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영희 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