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강훈구 연출가와 신인 극작가의 조합이 가진 시너지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난 6월 3일부터 7일까지 마포아트센터 소극장 플레이맥에 올라간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 이야기다. 올해 겨우 23세인 조민송 작가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최근 심각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고립·은둔 청년들의 고민을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발칙한 시선으로 다루며 강렬한 신고식을 치렀다.
강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공놀이클럽은 소위 ‘영어덜트 연극’을 표방하며, 청년 세대의 고민을 유쾌하고 감각적인 놀이 스타일로 풀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학적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극단 공놀이클럽은 최근 대중과 평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극단 공놀이클럽을 연극계에 각인시켰던 연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의 예리한 변주 같은 인상을 준다. 보수적인 가족주의와 퀴어 이슈를 다뤘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2026년 두산아트센터(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서동민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했다. 2024년 초연 당시 배우들의 역동적인 1인 다역 연기와 공놀이클럽 특유의 놀이 형식은 객석에 신선한 웃음과 위로를 안겼다. 특히 ‘역할 바꾸기’를 통해 사회적 편견의 전복을 꾀하며 큰 공감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번 <미미의 미미한 연애> 역시 그 연극적 DNA를 이어받아, 고립 청년의 내면을 무대 위로 한층 더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미미의 미미한 연애>는 말랑말랑한 제목만 보면 그저 발랄한 청춘 로맨스물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막상 극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 전혀 다른 공기가 감돈다. 현재 국내에 5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고립·은둔 청년 중 한 사람인 미미의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이 날것 그대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스물셋의 미미(박은경 분)는 유년 시절 겪은 아버지 문건식(구도균 분)의 가정폭력을 깊은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간다. 세상과 단절된 채 독자 없는 웹소설을 쓰며 방 안에 갇혀 지내는 미미가 현재 유일하게 의지하는 존재는 남자친구 기승(류세일 분)뿐이다. 스물다섯의 기승은 배달 라이더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사진작가의 꿈을 잃지 않는 청년이다. 두 사람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기괴한 복장 속에 자신을 숨기던 미미에게서 기승이 남다른 매력을 발견하며 서툰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 속 연애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밖에서 데이트를 하고 싶은 기승과 달리, 미미는 온종일 어두운 집 안에서 망한 공포 영화만을 반복해 볼 뿐이다. 다툼이 일어났을 때, 미미는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입술을 달싹이며 “미, 미……”라는 파편화된 비명만을 반복할 뿐, 온전한 사과조차 건네지 못하는 미미의 모습은 소통 능력을 상실한 이 시대 고립 청년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승이 이른바 ‘잠수 이별’을 통보한 뒤 사라진다. 결국 홀로 남겨져 엄마(김정아 분)에게로 돌아온 미미는 기승을 다시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마포구 창전동 원룸촌을 돌며 화장품 방문판매에 나선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두렵고 서툰 미미가 오직 기승을 만나기 위해 굳게 닫힌 타인의 문들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미미는 그 문들 뒤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채 신음하는 수많은 청년을 만난다.
그럼에도 미미를 가장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환영이다. 결국 미미는 오랜 상처의 매듭을 풀고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버지는 끝내 사과를 입 밖으로 내밀지 못한다. 대신 미미는 잔인하게도 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 지독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미의 미미한 연애>가 지닌 미덕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가정폭력이 세대를 관통하며 대물림되는 비극의 고리를 가감 없이 보여주지만, 이를 결코 아버지의 악행에 대한 면죄부나 값싼 용서의 핑계로 삼지 않는다. 비록 갈구하던 아버지의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미미는 타인에 기대어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 스스로 그 상처를 응시하고 버텨내기를 선택한다.
극의 후반부, 화장품 부작용으로 피부가 뒤집어진 기승이 다시 나타나 미미에게 뒤늦은 사과를 건넨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연인과 재회했지만, 이 연극은 미미의 앞날에 대해 해피엔딩이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여전히 현실은 팍팍하고 차갑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승을 찾기 위해 문을 두드려온 여정 끝에 미미가 마침내 자신의 내면과 마주했다는 사실이다. 미미는 이제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은 극단 공놀이클럽 특유의 ‘놀이의 연극’ 미학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배우들은 멀티 배역으로 종횡무진 변신하고, 미미의 불안한 속내는 환상을 통해 감각적으로 구현된다. 소박하고 단순한 세트는 빠르게 전환되며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집을 표현한다. 미미가 수많은 집의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접하는 동시대 청년들의 위태로운 삶은 현재 한국 젊은 세대의 초상이다.
특히 20대 초반인 젊은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대사들이 주목할 만하다. 극 초반 미미와 기승이 주고받는 생활 밀착형 대사들이나, 후반부 방문판매를 할 때의 만담 같은 대사들은 마치 짧은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리드미컬하고 재치 넘친다. 이러한 엉뚱하고 과장된 템포의 대사들은 극 전체에 통통 튀는 활력을 불어넣으며 관객들이 방심한 채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 연극의 진짜 매력은 그 웃음의 유효기간이 지극히 짧다는 데 있다. 관객이 웃음을 터트린 바로 그 다음 순간, 극은 미미의 깊은 트라우마와 어두운 환영을 기습적으로 들이밀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와 동시에 경제적 궁핍이나 불안정한 미래는 현실적인 언어로 묘사된다. 나아가 인물들이 자신의 유약함과 상처를 가감 없이 쏟아내는 대사들은 역설적이게도 시적이다.
극단 공놀이클럽 특유의 빠른 역할 전환과 호흡에 동화된 배우들은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한 순간의 지루함도 없이 무대를 장악했다. 타이틀롤 미미 역의 박은경은 예민한 은둔 청년의 면모부터,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려는 용기까지 섬세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여기에 아버지 역의 구도균은 가정폭력의 공포를 B급 코미디처럼 영리하게 비틀어 표현했다. 가해자를 우스꽝스럽게 무력화하여 무대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오히려 피해자인 미미와 관객들은 심리적 해방감과 치유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미의 미미한 연애>는 조민송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과 강훈구 연출가의 스타일리시한 감각이 만나, 단순한 청춘 연애물이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묻는 뜨거운 성장 서사로 거듭났다. 덕분에 관객들 역시 미미의 여정에 동행하며 외면해 왔던 자기 내면의 고독과 마주하고, 동시에 따스한 위로를 얻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듯 신인 극작가의 데뷔작을 만나는 것은 연극 애호가들에게 가슴 뛰는 일이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 뿜어내는 날카로운 매력을 목격하는 기쁨이자, 앞으로 그가 구축해 나갈 작품 세계를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강 연출가가 출강하는 대학에 재학 중이던 조 작가가 이메일로 보낸 대본에서 시작되어, 약 2년간의 치밀한 개발 과정을 거쳐 무대로 올라왔다고 한다. 연극계에 기분 좋은 충격을 던진 조 작가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진화해 나갈지,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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