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슬픈 청춘의 진짜 얼굴, 원룸촌 닫힌 문 뒤 숨어 있었네" <미미의 미미한 연애> 강훈구 연출, 조민송 작가 인터뷰

  • 글.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 INTERVIEW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는…

스물셋 ‘미미’(박은경)는 스물다섯 남자 친구 ‘기승’(류세일)의 다섯 평 원룸에 얹혀 산다. 함께 망한 공포 영화를 보고, 독자 없는 공포 웹소설을 쓴다. 남친 기승 역시 사진작가를 꿈꾸지만 늘 제자리. 기승은 가정폭력 트라우마 때문에 집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미미 뒤치다꺼리에 지쳐가다 흔한 ‘잠수 이별’을 통보한 뒤 자취를 감춘다. 그제야 문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낸 미미는 마포구 창전동 원룸촌을 돌며 ‘엄마’(김정아)처럼 화장품 ‘방판’(방문 판매)을 시작한다. 오직 기승을 찾기 위해. 하지만 열리는 문 뒤에서 미미가 마주하는 건 고립된 청년들, 그리고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것 같은 가정폭력범 아빠 ‘문건식’(구도균)의 환영이다. 미미는 기승을 되찾고 문건식을 퇴치할 수 있을까.

<미미의 미미한 연애>라는 제목만 보면 깨발랄 청춘 연애담인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면 54만명이 넘는다는 은둔 고립 청년들의 현실, 젊음을 옥죄는 고난과 억압이 무심하게 툭툭 튀어나온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들여다보는데도 시종일관 유머러스해서 관객은 속절없이 폭소를 터뜨리다 슬쩍슬쩍 눈물짓고야 만다. 웃기면서 슬픈 현실 청년 생태 보고서이자 끝내 트라우마에 짓눌리지 않는 꿋꿋한 청춘 성장기. 스물두 살 조민송 작가가 이 놀라운 데뷔작을 쓰고, 이상한 어린이 연극 <오감도>, <클뤼타임네스트라>,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등을 만들고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받은 강훈구 극단 공놀이클럽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7일까지 마포아트센터 소극장 플레이맥에서 공연하는 <미미의 미미한 연애>의 두 창작자를 만났다.

‘50고(稿)’ 거듭 고친 씻김굿 같은 데뷔작

[사진]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 강훈구 연출, 조민송 작가

조민송 작가가 대학 극작과 수업 과제로 쓴 30분짜리 초고가 시작이었다. 조 작가는 극단 공놀이클럽의 연극 <로켓 캔디>를 본 뒤 연극을 제대로 너무 하고 싶어졌다. 마침 같은 학교에서 강의하던 강훈구 연출에게 연락해 만났고, 메일로 대본을 보냈다. 어쩌면 넘어서고 극복하고 싶은 자신 안의 무언가를 담아낸 젊은 시절의 씻김굿 같은 이야기. 조민송 작가는 누군가를 악역으로 박제할 생각은 없었다. “내 안에 토해내고 싶은 감정을 솔직하게, 하지만 많이 정제해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처럼 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강훈구 연출은 “대본이 너무 좋았다. 2024년 겨울에 처음 만나서 신작 개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조 작가는 “50고(稿)쯤까지 고쳐 썼다. 처음엔 몇 번 고쳤나 세어 보다가 나중엔 세는 것도 그만뒀다”며 웃었다.

그동안 성경책 방판(방문 판매)은 화장품 방판으로, 주인공도 미미(박은경)의 남자 친구 ‘기승’(류세일)에서 작가가 더 잘 쓸 수 있는 또래 나이의 여자 미미로 바뀌었다. 애인을 되찾겠다는 욕망에 더해 아버지 ‘문건식’(구도균)의 존재 같은 미미의 개인적 트라우마가 더 구체화됐고, 원룸촌 ‘쉬었음 청년’들의 이야기도 더 다양하게 극 속으로 들어왔다. 조 작가와 강훈구 연출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대본을 개발하는 오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어쩌면 원룸촌 ‘쉬었음 청년’ 생태 보고서

[사진]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 공연 사진 ©공놀이클럽 이지응

극 중 미미가 ‘잠수 이별’을 통보하고 사라져버린 전 남친 기승을 찾아 돌아다니는 마포구 창전동의 빌라촌은 단순한 배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미미가 두드리는 문 뒤에는 다양한 ‘쉬었음 청년’(일할 능력이 있지만 구체적인 이유 없이 일하지 않는 청년)이 존재한다. 어쩌면 하나하나의 원룸이 각자 스스로를 가둔 감옥 같다.

조 작가는 “또래 친구들이 집에 있으면 잘 쉰다기보다 잘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가 원룸촌을 어쩌다 지나보면 유령도시처럼 조용하고 아무도 안 사는 것 같잖아요. 각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완전히 숨어 살아가고 있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원룸마다 랜덤하게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미미의 화장품 방문 판매는 그 세계들 앞에 닫힌 문을 두드려 열고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외톨이, 고아, 전세 사기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 사수생… 문 뒤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극 중 미미는 한 청년의 집을 이렇게 묘사한다. ‘기분 나쁜 음식물 쓰레기 냄새, 북향, 선한 마음이라곤 생기지 않는 채광, 이 정도만 있어도 세계라는 거 뚝딱 생겨나는구나. 그리고 계속 숨어 있는 거지 다들. 5.5평에 통조림처럼 담겨서 위로를 기다리고 있구나….’ 연극은 원룸촌에 사는 ‘쉬었음 청년’들을 친구처럼 애틋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또래의 젊은 작가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이야기다.

덕분에 극단 공놀이클럽은 강훈구 작 <폰팔이>, 서동민 작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에 이어 <미미의 미미한 연애>까지 어머니가 화장품 방문 판매원으로 등장하는 뜻밖의 ‘방판 3부작’을 완성했다.

거대한 트라우마 ‘문건식’, 유머로 무장해제

[사진]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 강훈구 연출

연극이 폭력과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도 흥미롭다. 연극은 영어로 ‘play’, 곧 ‘놀이’. 어떤 강렬한 감정도 놀이하듯 한발 떨어져 바라보면 객관화된다. 이겨낼 수 있거나 최소한 짓눌리지 않게 된다. 극 중 미미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 어릴 적 폭력을 휘두르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문건식의 환영이 도처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 작가는 “다 문건식 같은 게 하나씩 있을 거라고, 평생 회피하고 살아가는 혹은 있으면서 없는 척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썼다”고 했다. 미미가 끝내 마주해야 하는 아빠 ‘문건식’은 단순히 나쁜 아버지를 넘어 젊은 세대를 억압하고 마비시키는 거대한 트라우마의 상징 같다.

연극 속 미미는 문건식이 나타날 때마다 소리치고 괴로워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리는데, 관객은 깔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워낙 코믹하게 등장하는 문건식 역 구도균 배우의 역할이 크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아, 이거 웃기네’, ‘무서운 줄 알았더니 사실 별것 아니네’ 하고 생각하고 만다. 이 연극이 갖는 놀라운 격려와 치유의 힘이다.

자칫 진짜 호러가 될 뻔한 무시무시한 존재를 유머러스한 B급 코미디 캐릭터로 치환해 버린 과감한 선택은 강훈구 연출의 솜씨다. 강 연출은 “너무 진지해지는 걸 잘 못 견딘다. 항상 무거워지면 중화시키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공포와 억압의 주체인 아버지, 그 트라우마의 근원을 쫓아가는 되게 진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모든 게 미미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썼어요.” 강 연출은 “젊은 작가들이 자신이 경험한 폭력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 작가는 그걸 대본에 영리하게 녹였다”고도 했다.

뜻밖의 유쾌한 웃음이 가져오는 해방감

[사진]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 조민송 작가

데뷔 작가에게 자신이 쓴 글이 무대 위에서 관객과 만나 일으키는 뜻밖의 화학반응은 놀라웠다. 조 작가는 “저는 되게 진지하고 심각하거나 그냥 평범한 대화라고 썼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웃는구나, 그런 걸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엄마와 미미의 대화도 저는 되게 예민하게 싸운다고 생각하며 썼어요. 막상 무대에서 보니 자기들끼리만 예민해서 되게 웃긴 느낌이라 오히려 더 좋았어요. ‘우리 결혼할까’ 하는 미미의 말에 자신이 처한 현실을 고민하던 남자 친구 기승이가 ‘나 그런 거 완전 하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장면도 많이 웃어주셨어요. 또 엄마가 ‘나는 남자 복은 있어. 네 아빠 20년 전에 진짜 멋있었어’라고 할 때 객석에서 빵 터지는 것도 재밌었어요.”

작가 본인이 연극을 보며 늘 웃는 부분은 극중 화장품 회사 ‘미라지 퍼시픽’ 대리점의 방판 실장이 미미에게 ‘방판 수칙’을 알려주는 장면. “실장이 ‘겁내지 말고 시작하라’, ‘신경 끄고 새로 시작하라’ 같은 시덥잖은 수칙을 제시하다가 미미가 더 알려달라고 하니 ‘나도 배운 게 거기까지다’ 하거든요. 그 말이 볼 때마다 항상 웃겼어요.” 어쩌면 방판 실장은 정작 자신도 정답을 모르면서 맨날 원칙과 규칙만 내세우는 세상 ‘꼰대’들을 닮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즐겁지 않으면 유쾌함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다. 강훈구 연출은 “배우들도 다들 웃기는 걸 좋아해서 연습이 개콘 연습 같았다. ‘안 웃겨? 다시 해볼까?’ 하면서 무조건 웃기는 게 목표인 것처럼 즐거웠다”고 했다. 조 작가는 “연극 <로켓 캔디>로 좋아하게 된 박은경 배우를 상상하며 연극 속 ‘미미’를 썼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진짜 미미가 되어있더라. 정말 감동이었다”고 했다.

마포문화재단 상주단체로 ‘보금자리’

[사진]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 강훈구 연출, 조민송 작가

작품이 성가를 올리고 평단의 인정도 받았지만, 극단 공놀이클럽은 그간 마땅한 전용 연습실이 없어 연습 때마다 부동산 앱을 켜고 연습실을 찾아 유랑 생활을 했다. 올해는 마포문화재단 상주단체로 선정되며 사무공간에 연습실까지 든든한 보금자리를 얻었다. 마포문화재단은 기획부터 무대까지 극장 스태프들 열정이 뜨거워 더 든든하다. 강훈구 연출은 “대학로에서 마포아트센터는 ‘대감집’이라며 다들 부러워한다”며 웃었다. “직전 <벚꽃동산> 리허설 일정이 지연됐을 땐 무대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이 저녁 식사 시간도 양보하며 함께해주셨어요. 그런 일 진짜 드물거든요. 공연 뒤엔 ‘작품 너무 좋았다’며 격려까지 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미미한 미미의 연애>에 이어 극단 공놀이클럽의 연극은 연중 마포아트센터에서 이어진다.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마다 체호프의 4대 장막 희곡을 낭독 공연으로 올리고 있고, 10월에는 약 4주 동안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을 공연할 계획이다. 12월에는 제3회 '안 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을 열어 낭독 공연 7편을 소개한다.
 

관객은 왜 <미미의 미미한 연애>를 봐야 할까.

“음…” 하며 잠시 망설인 조 작가는 “일단 그냥 웃긴 연극이라 재밌으실 것”이라며 무대 위 인물들 ‘찌질’한 모습이 웃기다가도 문득 ‘어? 저거 완전 나인데?’ 하고 ‘나 같음’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강 연출은 “일단 마포구 창전동 원룸촌 배경이니까 여기 사시는 분들 많이 보러 오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예능 ‘이혼 숙려 캠프’ 같은 걸 보면 되게 자극적이라 웃고 혀를 차면서도 내 삶을 돌아보게 되잖아요. 저는 이 연극이 20대를 위한 ‘독거 숙려 캠프’ 같은 작품이 아닌가 해요. 데이트하며 보기도 좋고, 친구들과 함께 위로받기도 좋고, 끝나고 같이 이야기 나누기도 좋은 작품입니다.”

<미미의 미미한 연애> 속에서 상처는 유치할 만큼 가볍고 발랄하게 다뤄진다. 대사는 개그 만화처럼 톡톡 튀고 장면은 게임처럼 휙휙 전환된다. 마음 놓고 즐기던 관객은 어느새 각자 마음속 심연을 마주한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 밀려든다. 관객이 준비할 건 단 하나, 문을 두드리는 미미에게 각자의 문을 열어줄 여유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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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연극 <미미의 미미한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