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놀이클럽이 마포로 이사왔다. 지금 연극계에서 가장 힙한 극단 ‘공놀이클럽’이 마포아트센터 상주단체로 둥지를 튼 것. 내년이면 설립 20주년을 맞는 마포문화재단은 매년 클래식,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을 폭넓게 지역주민에게 선보여 왔지만, 특정 장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체와 장기적인 협업을 도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덕분에 연극 라인업도 대폭 강화됐다. 마포 주민들이 누구보다 가깝게 첨단 콘텐트를 누릴 수 있는 예술 분야가 생긴 셈이다.

공놀이클럽의 강훈구 연출은 지난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팁’으로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수상하는 등 공연계가 주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젊은 예술가다. 마포문화재단 고영근 대표도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에 오랜 기간 몸담았기에 워낙 눈높이가 높아 평소 직원들에게 “강북의 예술의전당이 되자”고 외친다는 고 대표가 매의 눈으로 강 연출을 알아본 것이다.
“마포아트센터의 극장 환경을 고려할 때 연극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극인들을 수십명 만났어요. 강훈구 연출도 그중 하나였는데, ‘영어덜트 연극’을 지향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결정했습니다. 마포에 중학교 15개와 고등학교 11개에 총 2만명의 학생이 다니고 대학도 홍대와 서강대가 있는데, 연극은 어린이나 중장년층을 겨냥한 것만 해왔거든요. 중간층을 위한 무대를 만드는 이분을 꼭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고) “창작극을 하면서 브랜딩이 필요해서 ‘영어덜트’를 내세웠어요. 블루오션이라 생각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또래 친구들과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며 연극을 해왔으니까요. 영어덜트라 내걸다보니 주변에 비슷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서 뿌듯하기도 합니다.”(강)
공놀이클럽의 연극을 본 적도 없이 상주단체로 결정한 고 대표는 최근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이상한 어린이연극 오감도’를 보고 무릎을 쳤다. “어린이 연극인데 어른이 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공놀이클럽 장점이더군요 . 연극이 메시지가 무거운 경우가 많은데, 메시지는 무겁더라도 재밌게 전달하기를 추구하는 것도 좋았어요. 마포도 재미있었으면 하거든요.”(고) “고정 연습실 없이 장돌뱅이 생활을 해왔어요. 주로 대학로나 한성대 인근을 전전했는데, 감사하게도 덕분에 연습실과 사무실까지 생겼어요. 사실 불러놓고 관심 없는 기관도 많은데, 너무 크게 환대해 주시고 우리가 하려는 것들을 소중히 여겨주셔서 더 욕심내서 해보려 합니다. 다른 곳의 상주단체들도 부러워하더라고요.”(강)
[사진] (왼쪽부터) 2026 공놀이클럽 시즌 라인업, 대표작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공연 모습
올해 공놀이클럽은 대표작인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의 3주 장기 공연을 비롯해 신작 ‘미미의 미미한 연애’를 개발하고, 체홉 4대 장막 낭독극 시리즈와 안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까지, 마포에서 총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 포문을 여는 것은 4월 4일 예정된 체홉 낭독극 ‘벚꽃동산’. 창작극으로 유명한 단체가 널리 공연되는 체홉 낭독극으로 시작하는 게 뜻밖이다. “저희가 내년이면 10주년이라 영역을 넓히고 싶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시민을 만나고 싶어서 체홉 장막을 시도해 보게 됐어요. 만원으로 저렴하게 모시는 프로그램이고, 체홉을 어렵고 지루하다고 여기는 분들에게 캐주얼한 분위기로 우리답게 유쾌하게 풀어낸 4대 장막을 보여드리려고요. 그동안 연극을 하고 싶지만 바빠서 못하는 배우들을 모셔 오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미디어로 익숙한 유명 배우들도 무대에 서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일반 연극엔 쉽게 시간을 못 내지만 낭독극은 일주일 정도만 비우면 되니까 부담이 적거든요. 일단 시민들이 연극을 보게 하고, 연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에요.”(강)
신작 ‘미미의 미미한 연애’는 특별히 마포구 창전동을 배경으로 삼는다니 더욱 흥미롭다. 단순히 동네 이름만 빌려온 것이 아니라 꼼꼼한 리서치를 거쳐 마포문화재단 상주단체로서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창전동의 남자친구 집에 얹혀살던 23살의 미미가 어느날 남친에게 버림받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친을 찾아 헤매는 내용이에요. 24살 신인 작가가 마포 1인 청년가구들의 우울과 고민에 관해 썼는데, 이 작품이 마포를 넘어 올해 연극계 화제작이 됐으면 합니다.”(강)

고영근 대표는 “그저 공연을 무대에 올릴 뿐 아니라 청년문제, 실업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 공감하는 계기 만드는 게 재단의 역할”이라고 맞장구친다. 지난해 매진사례였던 공놀이클럽의 대표작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올해 마포에서만 3주 동안 공연한다니, 지역 관객을 넘어 연극 마니아들까지 마포로 향하게 하려는 야심도 엿보인다.
“창작하는 분들이 극장이 없다고 해요. 마포가 대학로에서 가장 가까운 지자체 공연장이니 여기가 또 하나의 창작공간으로 인식되면 좋겠어요. 관객이나 창작자나, 마포의 젊은 층들이 굳이 대학로에 안 가더라도 마포에서 연극을 경험하게 되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고) “올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안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에 무려 83명의 작가가 지원했어요. 이렇게 작가들이 많은 줄 몰랐는데, 5명 밖에 못뽑거든요. 아쉬운 마음에 창작자들을 마포로 모을 수 있는 실험도 구상 중이에요.”(강)
‘안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은 공놀이클럽이 이미 자체적으로 두 차례 진행한 페스티벌로, 올해 마포에서 세 번째 행사를 열게 됐다. 작가와 연출가를 매칭해서 작품을 개발하고 배우들 앞에서 피칭을 한 뒤 팀을 만들어 낭독극 형태로 발표하는 창작 프로젝트다. 공공기관도 아니고 작은 민간 극단이 이런 일을 한다니 흥미로운데, 고 대표를 강렬하게 매료시킨 것도 ‘안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이었다.
“직원들에게 늘 하는 질문이 ‘왓츠 뉴’‘왓츠 디퍼런트’ 거든요. ‘안착한’은 발상의 전환이 다르더군요. 연출가와 배우를 매칭하는 부분도 굉장히 신선했는데, 직접 현장에 가서 보니 200명 가까운 배우들의 열기가 뜨겁고, 무대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이 하나를 향해가는 취지가 너무 좋았어요. 단체가 다른 지원금 받은 걸 쪼개서 운영한다는 얘길 듣고, 우리가 꼭 같이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했죠. 올해 행사가 정말 기대되고, 앞으로 마포의 대표 축제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고)“파트너를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마포가 손 내밀어 주신 거죠. 연극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동료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제가 시작할 때 외롭고 힘들었거든요. ‘교훈적이지 않은 청소년극’이라는 넓은 테마로 하고 있는데, 꽤 성과가 좋아요. 이제 두 번 페스티벌을 했을 뿐인데 벌써 3작품째 외부로 나가서 공연화 됐으니까요. 청소년들을 각 팀의 자문위원으로 모시는데, 그게 경력이 돼서 대학에 간 친구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식으로 선순환이 되고 있어요. 올해는 마포아트센터가 청년들로 우글우글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강)

공놀이클럽의 마포 이주로 가장 기대되는 부분도 주민들과의 직접 참여다. 고 대표는 구민들이 참여하는 생활예술 동아리 사업에도 기대를 드러냈고, 강 연출도 흔쾌히 돕겠다는 의지다. “마포를 연극으로 브랜딩해 나가는 데 구민들의 참여도 필요하거든요. 연말이면 ‘꿈의 무대’도 공연할텐데 그런 사업에도 강 연출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어요. 아마 우리 재단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고) “전부터 시민 연극에 관심이 많아 힘 닿는데까지 돕고 싶어요. 한국은 엘리트 연극인 비율이 너무 많지만, 지금처럼 일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세상에선 10년 안에 경계 없어질 거예요. 모든 시민들이 연극에 참여하도록 사방으로 뻗어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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